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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의 탈식민화를 영미권 비평가/학자/큐레이터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 Art History ‘Decolonizing Art History’

영국의 미술사가 협회(Association for Art History)가 발간하는 저널 ‘Art History’는 2020년 2월호의 첫 꼭지를 ‘Decoloniznig Art History’로 정했다.

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아티클은 영미권 곳곳(주로 영국, 미국 다음 캐나다 호주 싱가폴 등도 소수 포함)의 미술사가,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 수십 명에게 공통 질문을 배포하고 그 답변을 실었다. 질문은 다음 네 가지다.

  1. 지금 일고있는 미술사의 탈식민화 요구의 특이점은 무엇인가? 과거의 연구들과 비교해 어떻게 다른가?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페미니즘, 퀴어 연구, 막시즘 등) What is the historical specificity of current calls to decolonize art history? How are they different from previous challenges to the discipline (such as post colonialism, feminism, queer studies, Marxism)?
  2. 현재 미술사가 탈식민화 되어있는 정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탈식민화된 미술사의 모습은 어떤 형태이며 그것은 어떻게 쓰여지고, 실천되어야 하는가? What is your understanding of decolonizing art history now? What does a decolonized art history look like? How should it be written/practised?
  3. 미술사의 탈식민화가 당신의 연구 영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 결과는 무엇일가? 또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How might the decolonization of art history impact upon your own area of research practice? What would be produced from it? Might anything have to be jettisoned?
  4. 미술사의 탈식민화는 어디서 이뤄져야 하는가? 다른 영역에 비교해 미술사에 적절한 전략은 무엇일까? Where should decolonization in relation to art history happen? What strategies might different spaces for decolonization demand?

온라인으로 무료 공개된 이 아티클을 처음부터 읽어 나가면서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 기존 미술사의 학문적 연구, 교수, 실천 방식의 한계는 대부분의 학자들 사이에 이미 오래 전부터 공유된 상태다.
    • 르네상스 연구자는 ‘이미 시들어버린 르네상스를 계속 언급하는 것이 마지막 담배를 계속해서 찾는 니코틴 중독자처럼 느껴지지만 ‘미셸 푸코’가 말한 힘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연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Jill Burke, Professor of Renaissance Visual and Material Cultures at the University of Edinburgh)
    • 그리젤다 폴록 또한 기고했고 답변을 통해 ‘이리 오래 전부터 탈식민화 필요성을 제기해왔’음을 강조한다.
    • 런던대(UCL)는 Decolonising Arts Institute를 만들고 susan pui san lok 을 디렉터로 임명했다.
  • 특히 최근 이뤄진 ‘탈식민화’의 요구에 대해서는 ‘분노’와 ‘참을성이 바닥난 상황’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 Art History는 이것의 출발점을 2015년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학생들의 Cecile Rhodes 동상 철거 요구로 본다
  • 다만 기존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알고 있지만, 새로운 형태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
    • 이에 관해 Jas Elsner(옥스포드 Senior Research Fellow)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미술사는 근본적으로 유럽 중심적이며 기독교 계몽주의 관점에 기반하고 있다. 고대(플라톤, 플리니)와 기독교적 관점(비잔틴, 종교개혁 성상 파괴), 바사리, 빙켈만, 리글, 뵐플린, 파노프스키까지. 해결책이 있는가? 있지만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최소 1세기 동안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 공동의 의지도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고대 문자, 아프리카의 구술 문화 등등 굉장히 많은 맥락이 들어가야 한다. 출발점은 대화이며 그 기반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방법론이 되어서도 안 된다.

  • 구체적 제시가 불가능한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 지금 필요한 것은 같은 방법론을 일괄 적용하는 플라톤식 과거의 모델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들뢰즈식 모델이기 때문이다.
    • 게다가 ‘탈식민화’가 요구하는 다양한 문화권의 예술, 시각문화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단순한 예술 작품의 시각 언어 분석뿐 아니라 문화적 복잡한 맥락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 좁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과거 학자들의 서술에 갇힐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혹은 현장으로 가서 카테고리와 개념에 갇히지 않는 시각 언어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 그런 가운데 특이점을 파악해 실타래를 엮어내는 구체적인 연구가 나와야만 한다

원문은 링크 에서 볼 수 있다. 주요 답변 몇 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David A. Bailey

Director of the International Curators Forum

1- 탈식민화 요구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다. 필자는 1980년대 인종과 예술 창작에 관한 담론을 주도하고자 했던 세대인데, 당시는 Ten.8 같은 주요 매거진, 저널에 기고하거나 ICA, 화이트채플, 헤이워드갤러리 같은 기관에서 전시 기획을 하는 것을 의미했음. 또 Shades of Black(소니아 보이스, 이안 보콤과 함께한 프로젝트) 같은 출판물을 통해 그러한 요구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음. 새로운 세대 혹은 새로운 흐름 또한 이런 맥락에서 답변이 이뤄질 것으로 보임.

2-다양한 서사가 공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1990년대 ‘할렘 르네상스’ 기획전 Rhapsodies in Black(헤이워드 갤러리)을 열었을 때, 백인에 대항하는 서사로서 흑인 예술 서사를 그리지 않고자 주의했음.

3-탈식민화를 의식하면서 일하지 않는다. 다양한 영역을 개척하고 실천한다고 생각하고 일할 뿐. 새로운 것들에 대한 지지와 서포트 – ICF, Stuart Hall Foundation, Autograph 같은 노력이 중요.

4-구체적인 실천과 동반되어야만 한다.

Tim Barringer

Paul Mellon Professor in the History of Art at Yale University

1-미술사의 ‘탈식민화’라는 용어가 수사적 힘을 갖고 있지만, 미술사는 18세기 제국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미술사가 식민화된 영역이며 독립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 미술사는 절대 순수하지 않다. 다만 행간을 읽고 비판접 접근을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Naomi Beckwith

Manilow Senior Curator at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1-요즘의 탈식민화 운동은 교육과 큐레이터 방법론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관 내의 인구 다양성을 요구했으나, 이것은 숫자놀음에 불과. 좀 더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음.

2-개인적으로 답변할 수 밖에 없음. 나에게 탈식민화란 과거 어느 때보다 광범위한 ‘예술’의 정의 안에서 일하는 것, 정해진 개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 아직 캐논에 포함되지 않은 개인적 일화들을 신뢰하는 것, 캐논 자체의 폐지를 모색하는 것을 의미함.

Jill Burke

Professor of Renaissance Visual and Material Cultures at the University of Edinburgh

르네상스 연구자로서 시장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 이 시기에 미술사의 완전한 ‘탈식민화’가 가능할지 불확실.

나의 책 The Italian Renaissance Nude(2018)에서 말했듯, 르네상스 시대 ‘예술’ 개념의 창조는 군사적 리더들과 연관. 이 리더들은 이탈리안 전쟁에서 수천명을 죽였음. 그들이 불안한 체제를 강화하고, 식민주의적 폭력과 연루된 ‘유럽의 문화적 리더’들의 공통적 언어를 만들기 위해 예술을 이용했다고 봄.

이미 시들어버린 르네상스를 자꾸 언급하는 것이 마치 마지막 담배를 놓지 못하는 니코틴 중독자처럼 느껴지기도 함. 미셸 푸코가 ‘권력이 유효한 이유는 그것이 배제와 강요의 힘으로 작용하는 것뿐 아니라, 무언가를 생산하며 이를 통해 쾌락을 창출해내고, 지식을 형성하며 담론을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처럼. 다만 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힘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James D’Emilio

Associate Professor of Humanities and Cultural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South Florida

1- 근래의 요구들은 새로운 ‘변화’보다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불평등과 전체주의, 국가주의의 등장 때문에 예술, 문화, 교육이 위협받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이러한 위기 앞에서 상징적 승리보다는 분열을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캐논을 확장하기보다 그 자체를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중세 예술의 범위를 확장할 것이 아니라, 연대기적 모델 자체를 버려야 하는 것 아닌지? 대학의 커리큘럼은 전통적인 바운더리를 벗어난 협업을 추구해야 한다. 또 예술과 교육을 엘리트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포퓰리즘적 공격에 대항해 더욱 광범위한 대중들과 연결고리를 맺고 소통해야 한다.

3-고대와 중세 유럽의 비중이 과장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 문화들을 내던지기 보다는 과거의 식민화를 경계해야 한다.

4-독일 베를린 보데 뮤지엄의 2017-19 전시 ‘Beyond Compare’는 아프리카와 유럽 조각에 관한 동시대 접근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준 전시. 다만 조각상 등 과거 유산을 삭제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권력의 이용 방식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그 주체만을 바꿀 것인가 고민해보야 한다. 또 초등 교육에서 흔히 예술 교육이 간과되는데 시각 문화, 시각 언어를 익히는 것을 텍스트와 같은 비중으로 높여야 한다.

James Elkins

E. C. Chadbourne Professor of Art History, Theory and Criticism at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Chicago

2-운동가들의 비평에서 해석적 전략으로 변모하고 있음. 예술을 보는 새로운 방식중으로 생각함. /학생들은 글, 퍼포먼스, 큐레이팅 등 개인적 개입의 방법론으로 이야기하는 경향도 있음. /기관 혹은 전시에서 예술을 대변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도 있음.

3- 주류 서사에 포함되지 않은 ‘모더니즘’의 형태들에 관심을 갖고있다. 이를테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의 근대 실천 등. 그런데 개별 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생겨나고 있으나, 프랑스와 헝가리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보는, 전세계 30~40 지역을 아우르는 모더니즘 담론은 없다.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사는 ‘미지의’ 문화 문제를 ‘주류서사’를 가르치는 것으로만 대처해왔다. 이를테면 곰브리치의 ‘Story of Art’ 같은 것. 이 시기를 다룬 탈식민화된 미술사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러한 책이 전무하다. 이러한 낯선, 지워진, 해석되지 않은, ‘잊혀진’ 수백가지의 문화들이 함께 이야기되는 미술사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4-나는 지금 호주 북부의 Yirrkala에서 Yolngu Aboriginal art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탈국가주의적 미술사(postnational art histories)’를 연구하는 워크숍이 있다. 참가자들은 미래 호주 미술사를 위해 원주민 예술을 관심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최자 중 한 명인 Ian McLean 은 ‘탈국가주의적 미술사가 탈식민적 미술사와 미술 실천을 할 수 있는지 보자’고 제안. Yirrkala의 연구는 탈국가주의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다. 각국에서 탈식민주의, 탈국가주의 어떻게 보는지에 관한 관점을 공유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Zehra Jumabhoy

Art Critic and an Associate Lecturer at the Courtauld Institute of ARt

3-‘postcolonial’과 ‘decolonizing’이라는 용어 사이 흥미로운 긴장이 있음.
postcolonial은 남아시아 역사가들과 주로 연결됨 – Ranajit Guha, Dipesh Chakrabarty, Partha Chatterjee, Gayatri Spivak. 이들은 ‘근대화’의 대안적 방식을 제안하고자 했음.
이에 반해 decolonial 은 방법론이나 태도에 관한 문제.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과 근대를 향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 포스트콜로니얼 이론가들이 ‘대안적 모더니티’를 ‘포함’해주기만을 바랐다면, ‘탈식민화’는 더 공격적이고 광범위하다. 주류 역사에 ‘보상’의 형태로 포함시켜줄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의문 제기.
이를테면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미국 추상 담론이 ‘비정치화’, ‘예술을 위한 예술’을 말하면서 역설적으로 얼마나 정치적이었는지를 보라. 1960년대 (미국 정부가 후원한) 추상 예술 전시가 아시아에 봇물을 이뤘다. 그린버그는 미국 정부에 의해 순회전 ‘미국 예술 40년’전을 1966년 일본, 1967년 인도에서 개최하도록 지명되기도 했다. 미술사의 탈식민화는 유럽-미국 미술사의 신화를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4-탈식민화는 ‘at home for all of us’에서 이뤄져야 한다. 나에게 그곳은 영국과 코톨드 인스티튜트다. 코톨드에서 탈식민화를 하려면 비서구 예술에 관한 강좌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존의 커리큘럼도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르네상스와 메디치를 연구하는 사람은 무굴과 오토만도 들여다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영국미술사를 공부하는 것은 ‘잉글랜드 미술’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럽-미국 미술사를 탈식민화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악세서리처럼 다른 분과를 붙인 다음에 유행이 지나면 내다버리는 것이 아니다)

한편 동상 철거(옥스퍼스대에서 Cecil Rhodes 동상 철거 논의 처럼) 등 역사를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적극적인 인식이 더 생산적이다. 예를들어 영국 GCSE나 A레벨에서 대영제국의 현실을 가르쳐야만 한다. 투표하는 사람들은 난민 문제가 영국의 식민지적 과거와 제국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제국은 ‘탈식민화’의 가장 핵심적인 맥락이다.

Emanuele Lugli

Assistant Professor of Art History at Stanford University

2- 탈식민화 연구는 개방성을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기존에 사용했던 언어, 카테고리, 초점을 모두 재고하도록 만든다. … 미술사가들은 더 이상 예술적 성취의 목록을 가르치지 않으며 대신 물질적 생산이 이뤄지는 사회학적 과정을 들여다본다. 불행하게도 내가 보기에 현재 학계는 들쭉날쭉한 상황이며 기관들은 장식적인 수정만 가하고 있다. 교사, 작가, 큐레이터, 미술사가들에게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보다 추상적인 코멘트만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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