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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강연’이 아닌 ‘토론’을…

미술관에서 ‘강연’이 아닌 ‘토론’을 해보세요

미국 뉴욕 The Frick Collection의 교육 담당 head 인 Rika Burnham과 게티 뮤지엄의 교육 스페셜리스트, 엘리엇 카이키가 쓴 ‘미술관 교육'(다빈치)이 최근 출간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교육에 초점을 맞춘 에세이집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파편적으로 보석같은 내용들이 있더라구요. RP Institute를 찾아 주시는 분들께도 꼭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해 공유합니다.

여러분은 왜 도슨트의 설명을 듣나요? 아마 대부분은 그림이 어렵고, 무엇을 봐야할지 막막해 도움을 받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도슨트 설명을 듣다보면 “이 작품의 내용은 무엇이다, 이 작가는 어떤 작가다”라는 단정적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이런 방식의 설명을 듣고 그림을 보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 일까요?

우선, 아래 대화를 한 번 읽어봐주시기 바랍니다.

2004년 여름, 고등학생 단체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시장에 모였다.방과후 미술관 수업에 자주 참여한 이 학생들은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대여해 온 카라바조(Caravaggio)의 웅장한 작품 ‘엠마오의 저녁식사’ 주변에 서 있다. 짧지만 강렬하게 몰입하는 침묵이 흐른 후, 수업은 활기차게 시작된다.

카라바조, 엠마오의 저녁식사,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한 학생이 말한다.

“난 이 그림에 마음이 끌려. 식탁 가장자리에 있는 과일 바구니가 떨어지기 전에 달려가 잡고 싶거든.”

다른 학생은 그림 왼쪽에 있는 남성에 주목하며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려는 것인지 아니면 더 깊숙하게 앉으려는 것인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화면 오른쪽 손을 뻗은 남성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말한다.

“우리에게 가까이 보이는 손은 거의 우리 얼굴에 닿을 것만 같아. 그리고 어둠 속에 움직이는 손이 얼마나 크고 흐릿한지 봐. 꼭 세게 흔드는 것 같아.”

다음 누군가는 손을 허리띠에 집어 넣은 채 서 있는 남자, 식탁 위의 뼈만 앙상한 닭요리, 그 옆 투명한 그릇을 가리킨다.누군가는 화면 중앙 인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갈색 곱슬머리를 지닌 사람의 손이 그릇 위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아.”

“맞아. 물 속의 빛과 그녀의 손가락 위에서 떨어지는 빛, 유리그릇을 비추는 빛이 모두 같은 곳에서 나와.”

침묵이 흐른다.다른 친구가 덧붙인다.

그녀의 입술은 뭔가 말하고 싶은 것처럼 오므려져 있어.”

더 긴 침묵이 흐른다.

여자였어? 난 남자인 줄 알았는데

강사가 그 인물이 전통적으로 남성으로 보여지는 이유와 사실 그가 예수라는 것을 알려주기까지 논의는 한동안 계속된다.

이 대화는 미술관을 자주 찾은 미국의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대화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은 학생들이 예수를 묘사한 인물을 ‘여성’으로 보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부분이죠.

이날 갤러리 토론을 진행했던 강사는, 이 그림을 모를리가 없는 학생들이 가운데 인물이 여자인 것처럼 대화를 이어나간 것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그림 중앙에 있는 인물이 그리스도라는 걸 몰랐을까?

학생들은 이렇게 답했다.

“물론 알고 있어요. 이 그림은 정말 유명한 바로크 작품이죠. AP 미술사 수업에서 본 적 있어요.”

일부는 이 유명한 작품 하나를 넘어 카라바조의 삶과 경력까지 알고 있었다. 강사가 “왜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들이 답했다.

“네 맞아요. 그런 건 다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좋고 재미있고 즐거운걸요!

여기서 놀라운 건 미국의 10대 학생들이 그림에 대해 단정짓기를 거부하고, 호기심을 계속해서 이어가면서 그림을 소재로 대화하는 ‘놀이’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 또한 “사실을 알아내기를 늦추려는 선택을 하면서 학생들은 그림과 함께 ‘놀았을’ 뿐”이라고 설명하죠.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예술 작품을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시각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탈진실’, ‘뉴노멀’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들리고 있죠. 현대 사회는 이제 정해진 답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모험하고 탐구하며 개척하는 시대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그 과정의 길잡이로서 예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RP 인스티튜트에서는 강조해왔지요.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저 그림은 예수를 그린 것”이라고 단정하는 사람과, 그림 속 다양한 이미지를 내 눈으로 읽고 이리저리 맛보는 사람 중 누가 창의적인 사고력을 갖게 될 수 있을지는 상상하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의 대다수 도슨트 프로그램은 그림에 관한 단정적인 설명을 내려주고, 관객은 수동적 위치에만 두고 있죠. 아쉬운 부분이지만 시각 언어를 읽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문화 때문에, ‘떠먹여주는’ 스타일의 도슨트 프로그램이 인기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의 저자는 “예술 작품은 보는 사람의 경험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존 듀이의 말을 인용하기도 해요. 만약 도슨트의 설명만으로 그림을 본다면, 그 그림은 나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에 불과하고 말 겁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만이라도, 오늘부터 내 몸으로 직접 그림을 만나보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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